40에 읽는 쇼펜하우어 1
40대에 읽는 쇼펜하우어 서문
지식과 경험을 쌓는 20대, 일과 인관관계에 집중 치열하게 산 30대, 인생의 수많은 시험을 치르고 자리 잡기 시작하는 시기,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도, 실패하기도 하는 개인, 사회, 인생에서 기쁨도 아픔도 많이 겪는 시기, 직장일, 집안일, 부모님, 자녀의 육아 교육 등 생활에 치여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고 인간관계나 죽음에 대한 상실감에 대해 진지한 생각도 해보는 마음이 복잡한 40대에 만나는 쇼펜하우어 들여다보자.
쇼펜하우어는 누구인가
아르투어 쇼펜하워는 1810년 캐피틴 대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의학을 공부하다 방향 전환하여 칸트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서양 철학뿐 아니라 동양철학의 영향도 받는다. 10년 후 1822년 30대에 독일 베를린 대학교에서 강사 인용을 받고 당대 최고의 철학자였던 헤겔의 강의 시간과 같은 시간에 강의를 개설했다가 개인 강의실에서 강의를 해야 하는 참담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1839년 "인간 의지 자유에 대하여"로 노르웨이 왕립 학술원 상을 받았고, 1840년 "도덕의 기초에 관하여"로 덴마크 왕립 학술원에 지원했지만 당대의 철학자 헤겔 피히테등 피난했다는 이유로 수상 실패 철학적 은둔의 삶을 살게 되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자존감이 높았던 그는 자신의 천재성을 후대에 평가받을 것이라 위안했다. 그는 40대 중반부터 서서히 알려지고 인정받기 시작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을 바탕으로, 행복하게 살기 위한 처세술을 정리한 수필집. "소풍과 부록"을 계기로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됬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로 삶의 의지를 부정, 자살의 논의를 이끌어냈다면, 이 책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 더 낫다.'라는 주장을 펼친다. 행복의 기술은 잘 죽기 위함이 아니라 살기 위한 지혜, 이왕 태어난 인생 한탄만 하지 말고 의미 있게 살아보자는 의미이다.
쇼펜하우어는 45세부터 저서와 함께. 명성이 높아져, 60대에는 본 대학교를 포함 세계 여러 대학에서 그의 철학을 주제로 강의가 열릴 만큼 명성을 떨쳤다. 1858년 70세 생일에는 전 세계 축하를 받았다. "나는 이제 여정의 목적지에 지쳐서 있다. 지친 머리는 월계관을 쓰고 있기는 월계관을 쓰고 있기도 힘들구나, 내가 했던 일을 기쁘게 돌아볼 수 있는 것은 누가 뭐라 하든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소외를 말했다. 40대에 포기했다면 그의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고 행복도 만끽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에게 40대는 위기를 넘는 때이자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세계 명사들이 사랑한 철학자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의 최근 철학자 과학자 심리학자 문학자 법조인 음악가 정치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철학자 가운데 프레드리히 니체, 쉐렌 케고르, 비트겐 슈타인, 존 듀이, 윌리엄 제임스, 칼포퍼 등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프레드리히 니체는 자신이 철학자가 된 계기가 계기가 쇼펜하우어 때문이라고 말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를 모든 희망을 잃고도 진리를 추구한 사람으로 높이 평가한다.
과학자 가운데는 진화론의 이론가인 찰스 다윈과 상대성 이론가인 아인슈타인에게 영향을 주었다. 심리학자로서는 칼융, 에드아르트 하르트만에게 이론적인 토대를 제공했고, 음악가에는 바그너가 있다. 1854년 바그너는 쇼펜하우어의 음악철학을 찬미하며 "니벨룽겐의 반지"를 그에게 보냈다. 가장 큰 영향을 준 분야는 문학계다. 셀 수 없이 많은 문학가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헤르만 헷세, 프란츠 카프카, 도스토옙스키, 에밀 졸라, 오노레 드 발자크, 미셸 프루스트, 토마스 만, 등이 있다. 가장 유명한 두 사람을 꼽으라면 톨스토이와 노벨상을 받은 앙드레지드가 있다. 또한 정치인 가운데는 책벌레인 아돌프 히틀러도 빼놓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