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쇼펜하우어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가

drawing-betta 2024. 1.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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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쇼펜하우어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가

 

4장 쇼펜하우어 어떤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가? 이 장에서는 본능 영원을 위해 사랑한다. 사랑은 영원히 살아있음을 상징한다. 사랑의 형이상학. 연애 사랑은 이상향이자 현실이다. 사랑에 빠지면 콩깍지가 씌는 이유. 서로 차이만 는 기억한다면 사랑은 행복한 착각이다. 결혼 결혼은 공동의 실존이다. 결혼은 이해할 수 없는 행위들의 반복이다. 사랑과 결혼 그 후를 내다보라.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으면 행복에 가까워진다. 조건 인간은 더 완벽해지기 위해 사랑한다. 나와 반대인 사람에게 끌리는 실존적 이유. 사랑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라. 관계 당신의 거리를 유지하라.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마라.


함께 하기와 거리 두기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고독 혼자 있는 법을 익혀라. 홀로 있는 능력이 생겼을 때 가치 있게 살 수 있다. 온전히 혼자 있어보라. 공감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느껴라. 인간의 양가감정. 사랑하지 않아도 미워하지 말 것. 등 이렇게 이야기한다. 오늘은 그중 본능, 연애를 읽어보자.

 

본능 

 

영원을 위해 사랑한다. 사랑은 수많은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슬픔과 환희, 고통과 즐거움, 천국과 지옥의 경험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과 연애, 결혼은 인류가 태어난 이래 지금까지 이어진 영원한 관심사다. 사랑 때문에 사람들은 싸우고 자살을 하기도 하며 철학자도 결혼의 유혹에 빠뜨리기도 한다. 이기적인 사람도 사랑에 목을 매고 까다로운 사람도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일을 보면 사랑은 예측할 수가 없다. 우리는 사랑하면 풋풋한 첫사랑 짝사랑을 떠올린다. 대부분 이루어지지 않는 그리움은 고스란히 추억으로 남는데 이런 실패한 사랑을 플라토닉 하다고 미워하기도 하고 미화하기도 한다.

 

사랑은 영원히 살아 있음을 상징한다.

 

쇼펜하우어는 남녀의 사랑은 기본적으로 정신적인 사랑이 아니라 육체적인 관계를 염두에 둔다. 성욕은 인간의 욕망 중에서 가장 크다. 자기 보존의 욕망으로 우리 일상에서 가장 강렬하게 작용하는 본능이다. 우리가 비록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해도 남녀의 사랑에서 최종적인 목적은 후손을 낳는 것이고 그것을 위한 전제는 육체적인 접촉이다. 자연의 새로운 개체인 후손 또한 종을 유지하기 위해 똑같은 사랑을 되풀이한다.

"생식은 삶을 유지하고 시간의 무한한 삶을 보장하는 원리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으나 나의 삶이 자식을 통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세상을 영원히 사는 방법은 자손을 남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달 달콤한 환상뒤에 이 세상에 영원히 남으려는 의지가 강하게 작동한다. 개인의 살려는 의제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종족의 의제를 실현하는 것이다. 시련은 개인의 아픔이 아니라 그 집안의 생명이 끊기느냐 이어지느냐에 중대한 일인 것이다. 그 바탕에는 영원히 죽지 않고 존재하려는 삶의 의지가 있다. 생식이 유기체의 궁극적 목적이자 가장 강한 본능인 이유는 종족 보존을 통해서만 의제가 죽음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영원한 생존에 대한 의지의 발현이다.

 

사랑의 형이상학

 

에로스의 어원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에서 유래했다. 에로스는 결핍을 채우려는 욕망으로 얼핏 에로틱과 관련된 거 같지만 아니다. 플라토닉 한 사랑의 어원인 에로스는 완전한 지혜를 갖춰 아름다운 영혼이 되기 위한 과정을 일컫는다. 종족 보존을 위해서 사랑을 한다는 쇼펜하우어의 생각은 대가 끊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유교적인 우리의 전통과 비슷한 점이 있다. 자식은 내 삶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출산율이 세계에서 최저 수준인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에겐 사랑의 목적이 생명의 보존이라는 쇼펜하우어의 주장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다.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가 경제적인 문제, 교육적인 문제, 경력 단절 등이 있지만 나의 삶을 연장하지 않아 도 된다는 체념과 우리 자식에게 미래가 없다는 우려가 크게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성에 대한 의식도 많이 바뀌니 자유롭게 연애하고 헤어지는 일을 반복한다. 사랑을 일상의 일부분으로 여길 뿐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랑이 죽음을 넘어서기 위한 행위라는 쇼펜하우어의 주장은 생각해 볼 만하다. 우리가 이런 사랑의 형이상학을 알면, 쾌락과 환상에 이끌려 타인을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사랑하면서 사랑을 배운다.

 

연애

 

사랑은 이상향이자 현실이다. 우리의 다른 본능처럼 사랑은 환상의 옷을 입고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인연이 맺어지면 영원히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세상은 한없이 아름답다. 사랑에 빠지면 모든 것이 기쁨과 넉넉함으로 다가온다. 사실 사랑은 현실적인 조건이나 미래의 계획을 외면한 환상에 가깝다. 그 환상에 속아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랑이 위대하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우리가 연애에 빠졌을 때 느끼는 모든 행복감정은 모두 환상에 불과하다.

 

사랑에 빠지면 콩깍지가 씌는 이유

 

남자는 자신의 개성과 특질에 잘 적응하는 여자를 바라며 그런 여자가 나타났을 때 목숨을 바칠 각오로 희생적인 사랑의 전사가 된다. 사랑을 쟁취하려는 욕망은 너무나 강하며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사랑의 환상은 인간의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킨다. 사랑의 목적은 현실적으로 2세를 낳는 데 있으므로 이런 이기적인 행위를 통해서 자연이 이루려는 인류의 종족 유지라는 목적이 은밀하게 달성된다. 정신적인 교감이 바탕인 연애는 쇼펜하우어에게는 하나의 환상이다. 실제로 사랑의 본질은 생명의 보존에 있기 때문에, 철저히 신체적인 조건을 따진다.

 

대부분 남자들에게는 출산이 불가능한 나이가 된 여자는 성적 매력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소위 S라인의 몸매는 현재의 남자와는 관련이 없으며 태어날 아이의 생존과 관련된 조건이다. 남자는 여성이 몸매에도 관심을 갖는데 그것은 출산뿐 아니라 육아의 가능성도 본다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의 큰 키를 보는 경우도 장차 아이가 그렇게 좋은 유전자를 갖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건강한 아이를 낳으려는 욕망이 지배하고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은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니고 본능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서로의 차이만 기억한다면 사랑은 행복한 착각이다.

 

여성과 남성은 서로 다른 언어 욕구 감정의 차이를 겪는다. 같은 말을 해도 다르게 알아듣거나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처럼 전혀 다른 생각을 지닌 남자와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이유를 쇼펜하우어는 출산이라는 목적에 있다고 봤다. 사랑을 통해 느끼는 천국과 지옥은 하나의 착각이다. 연애결혼보다 중매결혼을 한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유는 조건을 맞춘 결혼은 현실적이기 때문에 환상이 덜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완벽함을 위한 갈망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사랑이든 연애든 각자가 선택한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제나 혼자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인생은 짧기 때문에 영원한 사랑은 없다. 다만 영원할 것 같은 착각 덕분에. 덧없는 인생에 우리는 잠시 웃고 우는 추억의 시간을 함께 한다.

 

 

사랑은 18C 후반 19C 초 대중소설이 등장으로 새로운 형태의 이야기구조 (로맨틱 러브)가 개인의 삶을 소설 속의 이야기구조에 끼워 맞추려는 노력이 시도되면서 1940년대엔 라디오, 영화, 1960년대엔 TV, 오늘날엔 넷플릭스 등을 통해 전해지며 로맨틱 러브 이데올로기에 세뇌된 현대인들은 문화적 고도의 자의적인 픽션을 마치 자연적이고도 생물학적인 사실인양 내 삶에 로맨틱 러브를 실현해야 한다는 착각 속에 고뇌 하며 살고 있다.

슬픔과 환희, 고통과 즐거움, 천국과 지옥의 경험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결혼으로 이어지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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